“생산적 금융 활성화 위한 제도 정비 시급” - 국민성장펀드 참여 등 금융회사의 생산적 금융 전환 위해 위험가중가산(RWA) 규제 완화 시급
- 벤처캐피탈(CVC) 투자 규제 완화, 벤처투자 소득공제 확대 등도 필요 - 교육세율 인상, 은행 폐점 신고수리제 등 금융사에 부담 주거나 경영자율성 침해하는 규제는 신중 검토 -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인하, 장기투자 세제 인센티브 신설 등 통해 자본시장 활성화 필요
금융권에서 부동산 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생산적 금융과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는 8일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경제계 의견’보고서를 통해 금융사들이 첨단산업과 벤처투자 등 생산적 금융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 조정, 벤처캐피탈(CVC) 투자규제 완화 등을 제안하는 한편, 교육세율 인상, 은행 폐점 신고수리제 등 금융사에 부담주거나 자율성 침해하는 규제는 신중히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 RWA(Risk-Weight Assets, 위험가중자산) : 은행이 보유한 자산(대출, 투자 등)에 위험도를 반영해 산출한 총액
보고서는 금융권 자금이 기업금융 등 생산적 분야보다는 부동산 중심으로 과도하게 편중돼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원화대출금 대비 부동산 대출 비중은 2020년 66.6%에서 2024년 69.6%로 상승했으며, 명목 GDP 대비 비중도 같은 기간 62%에서 65.7%로 확대됐다.

이러한 현상은 현행 규제체계가 생산적 금융이 어렵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규제에 따라 모든 대출에 위험가중치를 부여해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한다.
담보가 있는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는 평균 15%인데 비해, 기업대출은 75%(해외 신용평가사 BBB+~BBB- 기준)에 이른다. 특히 벤처투자에 대한 은행권 위험가중치는 400%에 달해 기업금융을 할수록 재무적 부담이 커져 결국 안전성 위주로 자금을 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고서는 기업금융, 벤처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조정하면 금융권 자금이 보다 생산적인 곳으로 흐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 금융건전성 기준인 바젤 III에는 정책목적의 펀드 출자에 대해 100%까지 낮출 수 있는 예외조항도 있으나 해당 조항의 국내 도입은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 바젤Ⅲ(Basel III) 규제 : 전 세계 은행의 건전성과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국제기준
상의는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정책목적 펀드 출자에 대해 RWA 가중치를 10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적 금융의 활성화 차원에서 ‘100조 펀드’ 조성에 동참해 달라는 금융당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벤처투자 활성화, 금융혁신 위해서는...CVC 규제완화, 금융지주회사 핀테크 출자한도 확대 필요
또한 상의는 금융이 단순히 자금조달 창구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신산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혁신의 촉매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의는 생산적 금융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로 일반지주회사의 벤처캐피탈(CVC) 투자규제를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는 CVC(Corporate Venture Capital)의 외부출자를 40%, 해외투자를 총자산의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어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실제로 작년 일반지주회사 167개 중 14개사만이 총 2,451억 원을 투자해 전체 벤처투자(10.9조 원)의 2.2%에 그치는 등 활용이 미미한 실정이다. 아울러 금융혁신 차원에서 ▲ 금융지주회사의 핀테크 출자한도 5%에 묶인 것을 확대하고 ▲ 혁신금융서비스(금융샌드박스) 기간 확대 ▲ 토큰증권 법제화 ▲ 디지털자산 개념 법적 정의 등을 제도 개선과제로 함께 제안했다.
교육세율 인상, 은행 폐점 신고수리제 등 금융사에 부담주거나 경영자율성 침해하는 규제는 신중 검토
한편 보고서는 금융회사의 부담을 지나치게 늘리거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추가적인 규제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부담법안으로는 우선 금융·보험업자의 수익금액에 대해 일률적으로 0.5% 단일세율을 적용하던 것을 과세표준 1조원 초과분에 대해 1%로 2배 인상하는 교육세법 개정안을 들었다. 교육세는 이름과 달리 금융회사가 교육시설 확충의 혜택을 직접 누리는 것도 아닌데 부담만 지는 세금이라,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 개정 시 60여개 금융회사가 연간 1.3조 원 규모의 추가적인 세 부담을 지게 돼 재무건전성 악화와 금리·보험료 상승 등이 우려된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금융권 수익이 늘었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서민금융 등에 의한 이자수익 등을 과세표준에서 제외하고, 실제 손익을 따져 남는 이익만 세금 기준으로 삼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또 은행 영업점 폐쇄 시 금융당국의 사전 신고수리제를 도입하는 은행법 개정안은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법안으로 꼽혔다. 고령층 등 대면거래 선호 소비자 보호 취지에는 공감하나 폐점 여부는 은행이 경영전략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실제 국내 은행 점포 수는 2020년 말 6,427개에서 올해 6월 말 5,521개로 906개(14.1%) 줄었다. 이는 디지털 전환 등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것으로 금융당국이 폐점을 직접 제한할 경우 경영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상의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주요국도 오프라인 점포를 축소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가부를 결정하기보다 사전안내와 의견수렴, 외부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통해 고객권익을 간접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인하, 장기투자 세제 인센티브 신설 등을 통해 자본시장 활성화 필요
또한 보고서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핵심 과제로 배당소득세 최고세율 인하와 장기투자 인센티브 신설을 제시했다. 현행법상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을 합쳐 연 2천만 원 이하면 15.4%를 원천징수하고, 이를 초과하면 근로소득 등과 합쳐 49.5%까지 누진 종합과세가 적용된다.

정부는 지난 7월 세제개편안 발표에서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방안을 내놓으며 최고세율을 35%로 설정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최고세율을 25%로 낮추는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최대주주의 배당 의지를 높이고 장기 투자자를 늘리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해외 주요국들은 투자 유인을 위해 배당소득에 대한 세율을 낮게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내국법인 배당이나 60일 이상 소유주식에 대한 배당 등 적격배당에 대해 0~20%의 범위에서 분리과세하고 있으며, 영국과 홍콩은 배당소득세를 아예 부과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일본도 10~20% 수준으로 우리보다 세 부담이 낮다.
이 외에도 상의는 ▲ 규모 및 손익여부와 관계없이 부과되는 증권거래세를 연 양도금액 1억 원 미만인 소액 투자자와 손익통산 후 손실을 본 투자자에 대해서는 환급받도록 한 증권거래세법 개정안 ▲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비과세한도를 연간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납입한도를 연 2,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도 자본시장 활성화 과제로 꼽았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0%대 성장률을 앞둔 상황에서 국가경제 활성화를 위한 금융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도 금융 활력 제고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자금이 부동산 등 비생산적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기업금융과 혁신투자 등 생산적인 부문으로 원활히 흘러가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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