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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감축과 산업경쟁력 확보
MT 시평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SGI 원장
정부가 최근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2035)와 제4기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을 발표했다.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부문별 감축목표는 산업 24.3~31.0%, 전력 68.8~75.3%, 수송 60.2~62.8%, 건물 53.6~56.2%로 설정됐다. 또 2026~2030년 배출허용총량은 선형감축경로에 따라 25억4000만톤으로 정해졌고 산업부문의 95%는 무상할당하고 나머지 5%에 대해서만 유상할당 비중을 15%로 결정했다. 발전부문은 2030년까지 유상할당 비중을 50%까지 단계적으로 높인다.
이번 계획은 국내 산업여건을 고려하면서도 국제사회에 대한 탄소중립 책무를 이행하려는 절충적 결정으로 평가된다. 산업부문의 목표가 상대적으로 완만해 보이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감축기술 개발과 상용화 속도를 감안할 때 결코 달성하기 쉽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전력부문의 고강도 감축목표와 유상할당 확대가 기업들의 전력비 부담을 크게 높일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전력부문 감축을 재생에너지 비중확대로 이뤄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발전단가가 하락하고 있음에도 송배전망 확충, 계통안정성 확보비용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독일 사례에서 보듯 재생에너지 비중의 급격한 확대는 전력가격 상승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발전부문의 유상할당 비중 상향조정은 전력가격을 추가로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전력가격 상승은 전력비 비중이 크고 대체가 어려운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시멘트 등 전력집약 산업의 제조원가를 압박하게 된다. 이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경쟁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중국의 저가공세로 이미 어려움을 겪는 전통 제조업의 경영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배출허용총량은 이미 결정된 만큼 이제는 실행을 위한 정교한 전략수립이 필요하다.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제도설계 등을 통해 비용상승을 최소화하는 종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전력부문은 가격, 계통안정성, 투자여건을 통합적으로 고려해 전력시스템을 재설계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첨단산업 확대 등으로 전력수요는 2030년대까지 연평균 2% 증가하고 전력가격은 일반물가보다 연 0.8%포인트 더 오른다. 그러나 유연한 시장구조 확립, 다양한 요금제 도입, 발전-송배전-수요관리 전과정의 기술혁신을 통해 전력산업의 생산성을 1%만 높여도 전력가격은 오히려 일반물가 대비 0.6%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 탄소중립 전환에 따른 전력가격 상승압력도 제도개선 등을 통해 흡수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탄소중립은 피할 수 없는 전환과정이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실행력을 높일 전략을 마련한다면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글로벌 책무와 산업경쟁력 확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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